사진의 원초적 질감의 회복 - 당선작 심사평
구나연 (미술비평가)
이번 사진비평상의 공모작들은 다양하고 적극적인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이 많았고, 오늘의 한국 사진이 지닌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예술의 장르에서 어느 작품을 선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번 공모 작품들 역시 이러한 난관 가운데에서, 나의 경우, 이미지가 지닌 사진 고유의 가능성에 방점을 찍고 심사하였음을 밝힌다.
그 결과 선정된 안재영의 <황곡> 시리즈는 사진의 시각적 질감과 그 힘을 생생히 드러낸다. 그는 강렬하고 암시적인 피사체의 텍스처를 모노크롬을 통해 표현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한강의 동명 소설을 모티브로 하여 그 서사의 이미지를 자신만의 풍경과 대상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그 감각적 언어는 소설의 내용과 별개로, 사진이 품은 강한 암시로 진화하고 있었다. 즉 그의 사진에서 소설은 이미지로의 출발을 촉구하는 구실이나 계기일 뿐, 그의 사진은 자신이 추체험한 가상의 이야기와 직접 마주한 현실의 풍경이 교차하면서 독특한 장면들로 체현되었다.
오늘의 사진이 지닌 기술적 가능성과 연출 사진의 다양한 시도와는 대조적으로, 안재영의 작업은 사진의 고전적이며 원초적인 이미지의 특성들과 맞닿아 있다. 그는 사진이 애초 예술로 존재하게 된 이미지의 능동성과 더불어 그 독자적인 시각 언어를 서사적이며 심리적인 공간으로 풀어냈다. 따라서 누구나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의 대중화와 이미지의 폭발적인 유통의 시대에, 그의 작업은 깊숙한 사유의 결과로 다가온다. 그의 사진은 손쉽게 유통되는 이미지의 피상성을 엄격히 경계하고, 피사체를 사진의 근본적 가능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갖고 있다.
안재영은 오늘날 사진을 둘러싼 복잡한 환경 속에서, 사진 이미지가 지닌 본래의 고유성을 회복하고, 사진을 통한 시적 감각을 복권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즉 오늘날 사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그의 사진에 내재되어 있으며, 이는 그의 작업이 지닌 커다란 장점이자 가능성으로 보인다. 여기에 자신이 소설을 통해 추체험한 심상을 사진의 사실성으로 대체하고, 피사체가 지닌 은유적인 시각성을 포착하여 내밀한 그만의 이미지 서사로 이어낸다.
더욱이 그의 사진이 지닌 촉각성은 강한 흑백의 콘트라스트와 실크스크린과 같은 거친 질감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그의 사진은 피사체와 이미지 사이의 거리를 능숙하게 조절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서 사진의 긴장감이 표출된다. 그는 대상을 사진의 이미지로 가져오는 일, 그 감각적이며 직관적인 선택과 표상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로써 그가 제시하는 이미지는 송곳과 같은 순간의 '풍크툼'을 획득하고, 여기서 안재영의 사진에 강렬함이 부여된다. 이같이 사진의 원초적 언어가 젊은 사진가의 작업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안재영이 이번 당선을 계기로 오늘의 사진에 대한 사유를 더욱 가속시키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사진이라는 예술을 지속적으로 탐구할 것을 요구한다. 그가 카메라라는 장치로 독특한 '장면'을 발견하고, 그 순간에 힘을 실어낼 수 있는 탁월함은 모든 심사위원이 동의하였으나, 이를 사진에 대한 절실한 태도로 이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 또한 존재했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은 장차 안재영의 작업에서 치열한 실험의 지속이 발견될 때 상쇄될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은 앞으로 그의 사진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이번 당선이 그에게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인 사진에의 숙명과 자신감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